근대역사문화거리
경북 영주시 광복로 23 (영주동) 근대역사문화거리

근대건출물과 함께하는 골목길여행 근대역사문화거리

 

영주 근대역사문화거리 사진1

 

영주 근대역사문화거리는 근대 시기의 영주를 만날 수 있어 역사적 가치가 높은 영주 가볼만한 곳으로

구도심의 북쪽을 수평으로 가로지르는 광복로와 관사골을 이어주는 두서길의 일부입니다.

이곳은 구 영주역사의 배후에 형성된 철도관사, 근대한옥, 정미소, 교회, 이발소 등 지역의 근대생활과 거리 경관을 보여주는 건축물이 남아 있는 거리입니다.

 

영주 근대역사문화거리 사진2

 

국가 등록문화재 제 720-6호로 지정되어 있는 영주제일교회는 강명서숙을 건립하여 신문물을 가르쳤으며,

영주 기독 청년회를 조직하여 계몽운동을 전개하는 등 영주 지역의 근대화에 기여하였다고 합니다.

일제의 신사 참배 강요에 저항하기도 했고 영주 제일교회 건물은 영주 지역의 유일한 고딕 양식 건축물입니다.

1954년 5월 1일부터 한국전쟁 당시 소실된 예배당을 신도들이 노역 봉사로 짓기 시작하여, 1958년 7월 25일 현재의 모습으로 완성하였습니다.

건물의 형태는 남북으로 대칭을 이루는 긴 직사각형 모양으로 정면은 광복로 방향으로 나 있고 그 왼쪽에 종탑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영주 근대역사문화거리 사진3

 

영주 제일교회는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근대 산업 시기를 거쳐 온 지역 주민들과 신도들의 삶과 역사적 흔적이 남아 있는 문화유산입니다.

 

영주 근대역사문화거리 사진4

 

영주제일교회를 지나 10m정도 걷다보면 녹슨 붉은 대문이 있는 풍국 정미소가 보입니다.

국가문화재 제 720-5호로 지정된 풍국정미소는 정미소는 벼나 보리 등 곡식의 껍질을 벗겨 내는 도정 작업을 하는 곳으로

영주는 일제강점기 경북 북부 지역 미곡 유통의 중심지로서 광복로 일대에는 30여 개의 정미소가 있었을 만큼 지역 양곡 유통의 중심지였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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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국정미소는 1940년에 설립되었으며, 해방 후 영암선 철도 개통을 계기로 경북 북부와 강원도 남부 탄광 지대에 식량을 공급하는 거점이 되었고,

정부미 도정 공장의 역할을 하는 등 큰 규모의 정미소였으나 현재는 영업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곳은 양곡 가공업의 형성과 양곡 유통의 역사뿐 아니라 정미소의 건축형식과 설비 구조, 각종 도정기기 등 당시 정미소의 흔적이 잘 남아 있어 산업사적 가치가 높은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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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등록문화재 제 720-4호로 지정된 영광이발관은 1930년대 국제이발관으로 영업을 시작하여 시온이발관,

그리고 현재의 영광이발관에 이르기까지 오랜 역사를 지닌 이발소입니다.

영광이발관이 있는 광복로 일대는 과거 군청, 경찰서 등의 관청과 학교가 모여 있었고, 옛 영주역과 가까워 이발업이 성행했던 지역이라고 합니다.

근대 산업 시기에 건축된 목조와 슬레이트 구조로 건축 완성도는 낮지만 80여 년 동안 지속되어 온 장인의 이발업 생활사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생활사적 가치가 높은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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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영광이발관의 이발사는 까까머리 학생들이 백발의 노인이 되어가는 50년 동안 이곳을 지키고 있습니다.

경상북도는 오랜 시간 이어 내려오는 가게를 노포 기업으로 선정하고 있는데 영광이발관도 그중 한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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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관사골 가는 길에 있는 영주 영주동 근대한옥은 길가에 위치해 있어서 그냥 지나칠 수 있지만 국가등록문화재 제 720-3호로 지정된 곳입니다.

영주동 근대한옥은 조선 명종 때의 유의 이석간에 관한 이야기가 전해져 오는 가옥입니다.

이석간이 명나라 황제의 어머니가 앓던 불치병을 고치자 황제가 그를 위해 99칸 집을 지어주었다고 합니다.

현재 99칸의 본채는 모두 사라졌고 1929년에 다시 고쳐 지은 별채만 남아있습니다.

별채는 앞면 7칸, 옆면 6칸 규모의 'ㅁ'자형 한옥 주택으로 한때 한의원, 하숙집 등으로 사용되어 일제강점기와 근대 산업 시기의 생활상이 남아 있는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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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등록문화재 제 720-1호, 제 720-2호인 구 역주역 5호, 7호 관사는 1935년 중앙선 철도 개설 공사에 참여한 공병대 기술자들의 숙소로 사용하기 위해 지어졌습니다.

건축물의 구조는 전형적인 목조 일식 관사 주택이며, 내부 공간 구성, 외관 형태, 구조 및 재료가 잘 보존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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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2년 중앙선 철도가 개통된 후, 영주역이 중간역의 역할을 하게 되면서 영주가 근대 도시로 발전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 관사 건물은 중앙선 개통 과정에서 조성된 철도 관사촌인 관사골의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다는 점에서 도시 생활사적 가치가 큰 곳이라고 합니다.

 

운영시간 : 상시오픈 

자료제공 : 경북나드리영주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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