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주역사테마공원(성주읍성)
예산리 516 054-930-6942

성주의 랜드마크, 성주역사테마공원

 

성주역사테마공원 사진1

 

성주역사테마공원은 성주의 옛 모습을 재현한 공원으로 성밖숲과 함께 군민들의 휴식처입니다.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한 조선 전기 4대 사고 중 하나인 성주사고와

조선시대 전통연못인 쌍도정 그리고 조선시대 모습을 그대로

복원한 읍성 북문과 성곽이 성주 역사테마공원의 중심입니다.

 

성주역사테마공원 쌍도전 사진

 

쌍도정(雙島亭)
쌍도정은 조선시대 성주 관아의 객사인 백화헌에 부속된 연못에 있던 정자의 이름이다.

네모꼴의 연못 속에 석축으로 둘러싼 2개의 섬이 조성되어 있어 쌍도정이라 칭하였다.

우리나라 정원 연못 안의 섬이 2개인 경우는 매우 드문데, 아마도 음양을 상징한 것으로 보인다.

쌍도정의 원래 위치는 성주읍 경산리 관운사 앞이었던 것으로 추정되며, 겸재 정선이 그린 「쌍도정도」를 바탕으로 전문가의 자문을 받아 현재 위치에 재현하였다.
 

비석원(園)
쌍도정을 지나 읍성 북문으로 오르다보면 왼쪽으로 보이는 산책길에 여러 기의 비석을 모은 비석군이 조성되어 있다.

주로 조선시대 성주의 수령이나 경상도 관찰사 등을 역임한 지방관의 선정을 기려 세운 선정비가 주를 이루며, 모두 20기의 비석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 가운데 「성산기공비」는 일반적인 선정비라기 보다는 이인좌의 난을 평정하는데

공을 세운 성주목사 이보혁과 지역인사를 기리는 공적비의 성격을 띠며 높이 262cm규모의 비로 20기의 비석군 가운데 눈에 띈다.
 

성주역사테마공원 사진2


성주읍성 북문
「신증동국여지승람」, 「경산지」 등 여러 지리지에 그 존재 사실이 기록되어 있으나 구체적인 형태나 명칭 등은 알려져 있지 않다.

이에 북문의 명칭은 성주를 상징하고, '인의예지신'에서 북을 가리키는 '지(智)'를 인용하여 「성지문(星智門」이라 하고,

누각의 명칭은 주민의 화합을 뜻하는 「민락루(民樂樓)」 라 하였다.

성문의 좌우로 성곽을 복원하였는데, 옹성은 없으나 치성을 두어 성문으로 침입하는 적을 경계토록 했던 모습을 나타내었다.

또한 여장과 총안(銃眼)도 설치하여 옛 모습을 재현하였다.
 

성주역사테마공원 사진3


성주사고
성주에 사고가 설치된 것은 1439년(세종21)의 일이다.

설치 당시 실록각은 성주목 관아에 인접해 있었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1538년(중종33) 11월 6일 화재로 일시 소실되기도 하였으나 다시 실록각을 건립하고 1540년 4월에 재차 실록을 봉안하였다.

이때의 기록에 따르면 사고의 건물을 2층으로 지었는데, 아래층이 넓게 트였고 2층 건물은 높이 솟아 사다리를 통해 올라갈 수 있는 중층 누각 형태의 기와집이었다고 한다.

이후 임진왜란으로 불타버린 성주사고는 국가의 정책에 따라 복원되지 않았는데,

성주역사테마공원에 재현된 성주사고는 전주 경기전에 복원된 전주사고와 조선전기 사고에 대한 연구성과를 반영한 결과물이다.

재현된 성주사고 실록각 이층 내부에는 소규모 전시관을 마련해 두었다.
 

성주역사테마공원 야경사진1


관천대(觀天臺)
성주사고를 등지고 솟아나 있는 봉두산 정상에는 관천대가 재현되어 있다.

관천대는 조선시대 천문관측 기구인 간의를 설치하였던 관측대를 말한다.

조성된 관천대는 서울 창경궁에 있는 관천대를 본보기로 하였으며,

"나라는 백성을 근본으로 삼고, 백성은 먹는 것을 하늘을 삼으니 농사는 의식의 근원이고 왕정의 급선무이다."

고 했던 세종대왕의 백성을 사랑하하는 마음과 혼을 담는 뜻에서 조성하여 탐방객을 맞이하고 있다

 

성주역사테마공원 사진4 성주역사테마공원 야경사진2

 

성주역사테마공원 야경사진3

 

자료제공 : 경북나드리성주군

지도